주일2부예배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복 있다


2013-06-23 6,195 관리자
하나님은 은혜롭고 공의로운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천지 만물을 주셔서 살게 하시고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구원하시고
인간이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시는 은혜로운 분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큰 은혜를 망각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하나님 말씀과 교훈과 법도를 무시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책망하시고 그 죄를 목전에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저지른 죄를 그 죄목대로 갚으신다면 견딜 자 없으니
우리는 평생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잘못할 때 심판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신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자.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방법이 바로 감사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의 불이 쏟아질 때
소알 산으로 가라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살았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말씀은 저주에서 피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가라” 해도 “오라” 해도 매사 감사뿐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 육체로 감당이 안 될 만큼 힘들기도 하다.
그런데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힘이 어디서 오는가?
나 같은 죄인을 불러 주시고 예수 믿어 죄에서 지옥에서 저주에서 구원해주시고
내게 영혼 구원하고 보살필 귀한 사명을 주셨으니
주님을 실망하시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스스로 용기를 주고
조금도 두렵지 않게 하는 능력이 바로 감사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이라는 행복의 극치 속에 살게 하셨다.
그런 아담이 무엇이 아쉬워서 선악과를 먹어 인류에게 멸망을 가져오게 하였는가?
감사를 잊게 한 마귀역사에 속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인간에게서 감사만 빼앗으면 그 영혼을 영원히 멸망시킬 수 있다(창3:1-6).
마귀는 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항상 생각을 장악한다.
하와는 마귀 이야기를 듣다가 그 말이 믿어지는 순간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었다.
아담과 하와가 감사를 잊고 선악과를 먹는 순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들이 득남하여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나 그 아들들도 저주 속에 살았다.
어느 날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찾으려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동생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나 형 가인의 제사는 상달되지 않았다.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을 만날 문을 드디어 연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사만 상달된 점을 시기.질투하여 아우를 돌로 쳐 죽였다.
아벨의 제사가 상달되어 자기 가문에 하나님을 만날 문이 활짝 열렸으니
그 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감사했다면 왜 아우를 죽였겠는가?
마땅히 감사해야 할 형이 아우를 돌로 쳐 죽였으니 이것이 바로 마귀역사다(요일3:12).
우리가 감사를 잊었다면 그것은 마귀역사에 속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본토 아비 친척집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여겼다.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 주셨다고 감사하니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고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됐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순간부터 감사해야 한다.
그 말씀이 나를 죄에서 지옥에서 고통에서 끌어내어 영원히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불평하는 자는 하나님 말씀이 들려와도 말씀 안에 있는 복이 무엇인지 모른다.
최초의 불평자는 마귀역사다.
왜 하나님만 영광을 받고 대접받아야 하느냐고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도전하다 타락한 천사가 바로 마귀역사다.
만약 내 안에 원망이나 불평이 있고 내 의를 주장하려고 남을 죄인으로 만들고
교회와 성도와 목사를 죄인으로 만든 경험이 있다면 회개해야 한다.
그 죄를 그대로 놓아두면 저주와 파멸이 되고 마귀 역사하여 결국 영육 간에 망하고 만다.
아브라함은 나이 일백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즉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명하신 산에서 칼을 들어 아들의 목을 치려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손을 붙드셨다.
그리고 수풀에 걸린 양을 잡아 번제로 드리라 말씀하셨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받으신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아끼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죽어야 할 대신
그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죽이셨으니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요셉을 통해 애굽 땅에 들어갔다.
그들이 애굽 땅에 처음 들어갈 때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430년간 엄청나게 번성하자 애굽 왕 바로는 수를 줄이려고
종족이 번성하지 못하게 심한 노동을 시키고 심지어 사내아이를 낳으면 즉시 죽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울부짖는 소리 하나님을 찾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었다.
만약 그들이 왜 자기들을 이토록 힘들게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다면
그 모진 고통 속에서 어떻게 해방되었겠는가?
우리는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주는 자가 마귀역사라고
또 자기 자신이 잘못한 행위의 결과라고 철저히 회개하고
나를 건질 자는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이 계시니 감사하다고 고백하며
그분의 도움을 강하게 요청해야 그 고통에서 나올 수 있다.
성도여 예수를 아무리 믿어도 되는 일이 없는가. 감사를 잊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얻는 최고 능력이 바로 감사다.
우리의 감사와 회개는 하나님과 사이에 닫힌 문을 활짝 열어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억압과 고통 속에서 이끌어냈지만
감사를 잊고 교만과 불만불평 우상숭배와 간음을 하는 자들은 멸망했으니(고전10:7-11)
감사가 사라진 그때부터 멸망과 파멸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믿노라 하면서 불만불평 하는 자들이여
마귀역사는 그 불만불평을 통해 병들게 하고 문제를 만들고 사건과 사고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더 원망하게 하여 그 영혼을 파멸로 이끈다.
왜 유다가 예수를 팔았는가?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임당했는가?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부 관계나 자녀 관계에서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 관계에서
모든 삶에서 우리는 절대로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시비는 모두 감사를 망각할 때 시작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감사하며 살자.
감사함으로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원수를 몰아내자.
이번 맥추감사절에 하나님을 뜨겁게 감동하게 해
하나님이 무제한 붓는 복이 내게서 비켜가지 않게 하자.
아니 모두 내 몫으로 받아 누리자. 그러려면 감사로 복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